최근에 한 번, 졸업관련된 큰 고민이 있었다. 지도교수님과 12월에 개별미팅을 하다가 생긴 고민인데, 그 때문에 난생 처음 불면증까지 겪을 정도로 내 머리가 복잡했었다. 난 머리만 대면 어디서든 언제건 상관없이 자던 사람인데...
각설하고,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 연말 holiday season)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보았다. 일단 건물에 사람이 없으니 오후쯤에 나가서 새벽까지 실험하고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하다가, 몸이 맛이 가버리는 바람에 한동안 집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자연스레 Amazon Fresh의 편리함과 위대함을 깨닫게 되었고, 여기 생각보다 멀쩡하고 맛있는 것을 많이 판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몸이 망가지게 된다 ㅎㅎㅎㅎ 왜냐면 맛있는건 대체로 몸에 안 좋거든. 망할 치킨너겟....
나는 본래 태어날때부터 몸이 약했기에, 대학을 가고 나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봤다. 밤마다 뛰고, 낮에는 기숙사 짐에서 운동하고, 먹는 양을 늘리고.... 하다 보니 건강하진 않은데 뭔가 내 기준에서는 돼지가 되어 있었다. 앞자리 7을 처음 봤던 것 같다. 스물둘~셋 때에는 체계적으로 운동을 했...나? 어쨌든 건강하게 살을 잘 빼고 근육도 만들었는데. 다행히 그 때 만든 체력이 지금까지도 가는 것 같기는 하다. 그 때 만든 체력으로 지금도 버티고는 있는데, 이게 미국에 오고 나서 몇 가지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바로 스트레스 관리.
코로나 때문에 댄스홀이 죄다 닫았고, 학교에서 그나마 열리던 스윙키즈 강습도 온라인이 되어버렸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couch potato가 되었고, 몸무게는 또 불어나기 시작했겠지 뭐. 뻔하다.
코로나가 터진 직후에 PhD qualification exam 을 쳤고, 패스한 다음에는 재미삼아서 집 근처 트레일에서 하루 한시간씩 러닝을 시작했다. 원래 걷고 뛰는걸 좋아했어서 다리의 튼튼함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뛰니 허벅지니 종아리니 난리가 났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2020년 말. 억울하다. 없던 걸로 하고싶다. 2020년 나이 안 먹은걸로..... 최소한 0.5살로 딜해주면 좋겠지만 원래 행복한 일은 안 일어나니까 넘어가고.
머리가 갑자기 안 돌아가기 시작했다.
Work from home이 주는 단점 중 하나인 것 같다. 일과 생활이 분리가 안 된다. 원래 분리시키려고 하던 사람은 아닌데, 강제로 WFH가 되니 이걸 분리하지 않으면 삶이 망가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와중에도 꾸준히 아마존 프레쉬로 살을 찌웠고.
콜라는 위대하다. 술담배를 안 하다보니 결국 하나 즐기는게 coke zero인데 이것도 사실 간에 주는 부담은 비슷하다고 하더라. 아니면 말고, 어쨌든 안먹는게 훨씬 좋겠지. 근데 안 먹을순 없다. 나도 사람이니까.
주로 집에 있으면서, 연구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데스크에 앉아있는 시간은 길어지는데 아이디어는 영 구렸다. 오히려 멍청해지는 느낌.
쓰레기 버릴 때나 커피마실때 루프탑 가는 거 외에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지가 일주일이 지났을 때 즈음,
불면증은 극에 달했고 몸 컨디션도 최악이었다. 이러다 죽을 것 같아서 억지로 밖에 나가서 한시간을 걷고 들어왔는데,
특이하게도 갑자기 논문이 잘 읽히고 아이디어가 잘 나왔다. 그 아이디어를 그대로 실험실에 들고가서 실험을 해봤는데, 결과가 흥미로웠다.
바로 지도교수님과 미팅을 잡았고, 결과가 좋았다. 고민도 해결됐고, 드디어 나는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그 날 이후로 수면사이클을 다시 원래대로 돌리기 시작했는데, 거기에 반드시 아침 10시에 30분 정도 트레일을 뛰는 루틴을 추가했다.
Daily photoshoot w/ Iphone, on the Burke-Gilman Trail. Copyright @Kim's Library
첫날이 아주 지옥이었다.
한동안 안 뛰어서 러닝에 쓰이는 근육이 다 엉망이었기 때문에, 하루종일 그리고 그 다음날도 근육통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아침에 죽을것같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낮에 일할 때의 효율이 조금씩이지만 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몸은 엉망이다. 식단이 박살났던 덕에 소화도 잘 안되고, 장은 부어있고, 근육이 빠진 몸은 푸쉬업 100개 하기도 버겁다 (작년에는 하루에 300개씩 했었다). 그렇지만 뛴지 3일이 지났을 때 다리는 더이상 근육통이 오지 않았고, 수면의 질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머리가 다시 멀쩡하게 돌아간다.
의자에 앉아만 있으면 멍청해진다.
걷고 뛰어야 한다. 걷기와 뛰기의 위대함은 이미 많은 과학자들 및 학자들이 강조한 지 오래다. 다만 내가 안 지키고 있을 뿐.
Image from "Imitation Game", captured from the movie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을 보면, 매일 아침 (저녁이었나?) 앨런 튜링 (베네딕트 분) 이 뛰는 장면이 반복해서 나온다. 나는 이 영화에서 다른 장면보다도 이 부분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뛰는 수학자, 날이 다가올수록 더 많이 더 빡세게 뛰는 앨런.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박사과정 4년차의 1/4을 보낸 시점에서, 남은 시간들을 어떻게 보낼 지, 적어도 한 가지 루틴은 명확해져서 좋다.
제가 컨설팅을 시작한게 대충 4년차인 듯 한데, 컨택해서 손해본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컨택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보통 안 하던데요, 자신 있으시면 안 해도 됩니다. 전세계 학생들과 싸워서 이길 자신 있으면 안 해도 되요. 근데 학부마치신분들, 예를 들어서 박사 지원한다고 해 봅시다. 학사만 했으니까 얘는 연구경력이나 실적 없는게 당연하네? 라고 생각 안 합니다. 그냥 떨구죠. 경력 / 실적에서 딸리는데 컨택마저 안 하겠다구요?
연구경력 있든 없든, 학사든 석사든 무조건 컨택은 필수입니다. 선택이라고 말하지만 필수인 선택이에요. 지원전 장학금이랑 비슷한 개념입니다.
왜 필요한지 이해가 잘 안 되시는 것 같아서 말씀드리자면,,,,
여러분과 정확하게 동일한 스펙의 지원자와 최종에서 붙었다고 합시다. 당신은 컨택을 안 했고, 상대는 컨택을 했어요. 그럼 누가 뽑힐까요?
이것은 사전에 해당 과/교수와의 논의를 진행하는 선제적 조치 및 이득의 차원에서도 좋은 것이지만, 최종장에서 적극성을 어필하는 카드가 되기도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보다 세상이 넓어요. 유학은 전 세계 학생들과 붙는겁니다. 설카포 아니면 학벌로 밀립니다. 실적? 여러분보다 훨씬 좋은 괴물들도 많아요. 학부생이 1저자 논문 몇 개씩 들고 지원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전체 퀄리티에서 MIT, 하버드, 스탠포드 출신 학부생이랑 붙어서 이길 자신 있나요?
미안하지만 1000명 중에 1명 꼴이라고 생각하고, 또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은 그 1명이 아닙니다. (아닐 겁니다 라고 쓰면 혹시나 하는 희망을 가질까봐 좀 신랄하게 가겠습니다) 왜냐면, 스스로에게 자신있으면 굳이 이 정보를 안 찾아보겠죠. 제 블로그까지 들어올 일도 없을겁니다. 제 컨설팅 목록 중에 설카포 학부 출신 지원자는 없었어요. 알아서 잘 하고 실력도 충분히 갖췄다는 뜻이겠죠.
컨택을 진행하다보면,
분명히 여러분은 이런 답장을 많이 받게 될 겁니다.
"미안합니다. 당신의 퀄리티는 마음에 들지만, 우리 학과/학교에서는 당신을 직접적으로 내가 뽑아서 나의 그룹에 소속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우리 학과에서는 사전 컨택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학과 스크리닝에 합격하고 나서 최종 어드미션을 받은 후에 다시 얘기하죠"
그리고 심지어 학과 홈페이지나 연구실 홈페이지에서도 "사전 컨택을 금지한다" 는 글을 보게 될겁니다.
실제로 사전컨택 금지하는 학교가 하나인가 두개를 본 적이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컨택하면 유리할 수 있어요.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저 모든 말은요. "너에게 관심이 없다 혹은 너 별로다" 입니다. 진짜 뽑고 싶잖아요? 어떻게든 뽑을 수 있어요. 학생을 direct picking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교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권한을 너에게 쓰고싶을 만큼 매력적이지 않다는 뜻이 되겠죠. 반대로 말하면 나는 주변에 이걸 정말 끈질기게 매달려서 컨택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입학한 친구들을 많이 봐왔습니다.
그러니 제발 저 위의 답변을 받았다는 핑계로 "아 역시 컨택은......" 이라는 생각을 않길 바랍니다.
컨택 팁입니다. 같은 과 내에서 여러 교수님에게 동시에 컨택하는 건 예의가 아닙니다. 그러나 한 분에게 거절당했거나, 일주일이 지나도 연락이 없을 시에는 리마인드를 보내거나, 다른 교수님께 컨택을 진행해도 문제될 것이 전혀 없으니 안심하고 진행하세요.
그리고, 해당 교수님이 어떤 연구를 하는지, 왜 이 교수님에게 관심이 있는지를 에둘러 설명하지 말고, 직접적이고 날카롭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미리 공부하세요. 본인이 어떻게 그 연구실에 기여할 수 있을지도요. 석/박사 가리지 말고 하세요.
여전히, 올해도 컨택의 advanced 팁을 공유하려 합니다만, 이건 메일로 문의주시는 분들께만 따로 알려드릴 겁니다. 저도 메일로 일일히 답하기 귀찮지만, 공개된 공간에 오픈하고 싶은 팁은 아니라서요. 작년에 컨설팅 받으셨던 분들은 아마 아실테니, 굳이 또 물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같은 내용이에요.
제목이 좀 괴상하게 들리리라 본다. 근자감이 썩 좋은 어감으로 들리는 단어는 아니니까,, 오히려 비꼬는 투의 이야기, 네거티브 쪽의 단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자감은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생각보다 중요하다.
내가 언젠가 친한 친구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바로 '너는 자존감이 비정상적으로 높다' 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얘가 이렇게까지 스스로에게 자신을 가질 만한 이유가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가만 보면 스스로를 너무 사랑하고 자존감이 하늘 끝에 걸려있어서 절대 죽지를 않는 것 같아 보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비슷한 이야기를 내가 오래간 알아왔던 선배에게도 들었으니, 대충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건 얼추 맞는 이야기 같다.
이걸 혹자는 불편해 할 수도 있다. 한국의 미덕은 겸손이니까, 스스로를 높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주위에서의 고까운 시선들이 꽂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고, 변해가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을 썩 좋아하지 않는데, 이는 사실 부자들이, 기득권들이 만들어둔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되고 싶거든 절대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가끔 병신이 성공하는 걸 볼 때가 있다. 여러분 주위에도 '아니 어떻게 이럴수가 있지' 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친구들이 성공하고 앞서나가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으리라.
그것이,
본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음에도 노력을 하는 사람의 장점이다. 객관화가 안 되는 만큼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것. 객관화가 잘 되는 사람은 문제나 사고를 크게 일으키지 않지만, 바꿔 말하면 그 이상으로의 도전을 하기 어려워한다. 주제 파악이 잘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쓸데없는 자신감이 가득차서 본인의 수준을 생각안하고 막 위로 파고 올라가는 사람은, 물론 실패하기도 하지만 의외로 종종 성공하기도 한다. 의외로 수준미달의 사람이 어떤 상위 집단에 속해서 그 집단과 어울리고, 그 집단을 따라가다 보면 그에 걸맞는 수준으로 격상되어 실제로 그러한 사람이 되는 경우를,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성공에 다다르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삶도, 목표도, 이루려면 한참 멀었고, 여전히 그 꿈을 향해 가는 과정에 있지만, 중간중간에 필요한 것 들을 이루거나 얻지 못했던 적이 의외로 거의 없다. 그게 내 실력이 뛰어나서냐고 묻는다면 no. 그러나 나는 나를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믿는다. 실패할 거라는 생각을 거의 안 하고 살다보니, 오히려 그게 나에게 긍정적인 면을 가져다 주는 것 같다.
COVID-19 가 이슈가 된 지 벌써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 곳, 미국의 직장인 대다수는 재택근무를 해야 하거나, 아니면 job을 잃어야만 했다. 다행히도 나는 학과의 보호를 받아, 재택근무를 하면서 별 문제 없이 지내고 있다. 그러나 벤치웤을 해야하는 학과/분야의 한계 덕분에, 재택근무의 효율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올해 1월부터 현재 6월에 이르기까지를 리캡해보면,
1. 실험이 한번 크게 망했다.
- 그러나 망한 결과에서 다른 결과를 도출해 내는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해석의 방향과 방법에 따라서 실패한 결과라도 가치있게 활용될 수 있음을 제대로 체험했다. 이 것을 그냥 문장 자체로만 알고 있는 사람은 굉장히 많다. 아마 모든 박사과정 학생이 이걸 머리로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직접 체험해보고 그걸 새롭게 해석해서 활용하는 hands-on 경험을 가지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일 것이다.
2. 예전 소속기관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 관련해서, 1저자 논문 한 편과 공저자 논문 한 편을 드디어 submit 했다.
- 특히 1저자 논문은 정말이지 긴 여정이었다. 2015년에 시작했던 연구인데 5년여가 지난 지금 1차적으로 마무리가 되었고, 당초 계획했던 저널보다는 한 단계 눈을 낮추어 냈지만. 지금에 와서는 사실 욕심이 조금 덜하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내가 주도적으로 진행했던 연구니만큼 어서 publish가 되어서 발표하러 다닐 수 있다면 좋겠다.
3. 자격시험 (qualifying exam) 을 통과했다.
- 이제 와서야 얘기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면서 가장 두려움이 컸던 게 바로 이 시험이었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내 나름의 논리를 만들고 펴 나가면서 정리하고. 세상에 시연된 바 없는 기술을 디자인해서 커미티를 설득시켜야 하는 시험. 이것이 개인적으로 내 가장 큰, 박사과정 유학의 허들이었다고 생각한다. 한 번 실패했고, 두 번째 시도에서 깔끔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
이 정도다.
재택근무를 강제로 하게 되서 고통받던 나날들이 지나가고 있다. 6월 초까지는 실험실을 나갈 수가 없어서 그냥 집에서 일한답시고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종일 잠만 자던 날이 떠오른다. 실험을 해야 하는 연구자의 입장에서, 이런 점은 굉장히 힘들고 우울해진다. 말 그대로 아무 것도 하는 게 없기 때문이다. 지도교수님도 하와이에 놀러갔다가 갇히시는 바람에 이래저래 곤란한 상황이었다. 할 수 있는 건 가끔 줌 (ZOOM) 으로 화상미팅을 하고, 앞으로의 연구 방향에 대해 간략하게 토론하는 것 정도.
그런데 이 줌이라는 프로그램이 생각보다 잘 만든 것 같았다. 스카이프나 팀뷰어로도 가능한 것들인데, 뭔가 인터페이스가 훨씬 직관적이고 접근이 쉬웠다. 미팅룸을 매번 새로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오히려 귀찮기보다는 편의성 측면에서 장점이 많았고, 그 결과 현재의 화상미팅 프로그램의 대다수를 줌이 잠식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겠다.
줌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아마 제법 재미를 봤을 거다.
결국 대박이라는 건 여러 번의 시도, 그리고 기존의 것을 개선하려는 꾸준한 의지에서 나온다고 본다. 스티브 잡스가 그랬다. 창의성이란 있는 것들을 연결시키는 거라고. 아마 거기서부터 시작일 것이다. 누군가가 이미 플랫폼을 만들어 놨어도, 그 벽에 좌절하지 말고 분석하고 분석해서 나은 것을 만들어내는 것.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자세고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아닌가?) anyway, 살면서 효율에 대한 생각을 좀 많이 하면서 지냈던 것 같다. 오늘은 그 중 한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일하다가, 머리 좀 식힐 겸. 그리고 때마침 오늘 이 글을 쓰게 만든 물건이 아마존에서 도착했는데, 깜빡하고 집구석에 쳐박아뒀다가 방금 꺼내보고 '역시' 이 물건의 훌륭함에 감탄하던 차라.
아무튼, 시작해보자면.
대학생 때, 아마도 2학년때였을거다. 과외를 시작하고 나서 드디어 여유롭게 옷이라는 걸 살 수 있게 되었을 때인데, 그간 그 부분에 대해 맺힌 한이 많았기 때문인지 별 놈의 시도를 다 해봤던 것 같다. 그렇게 대강 1년인가를 미친놈처럼 옷을 사제꼈는데, 대부분이 셔츠나 블레이져 같은 옷들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난리발광을 하고 나니까, 스타일 자체가 많이 올라갔을 수는 있어도 (그 전에 비해. 왜냐면 그 전이라 칭하는 시절에는 돈이 너무 없어서 천구백원짜리 티셔츠 반팔 긴팔 각각 다섯 장 지마켓에서 사서 일년내내 돌려입었으니...), 오히려 삶의 만족도가 이상하게 되기 시작했다. 아침에 학교를 갈 때나, 놀러 나갈 때나, 언제든 옷을 고르는 시간이 너무 늘어났고, 셔츠는 죄다 한번입고 빨고 다려야 됐고, 블레이져도 내 수준에서는 비싼 걸 사다보니 함부로 막 입지도 못했고 드라이클리닝도 주기적으로 해야 됐기 때문에.. 갑자기 이게 뭔짓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계속 셔츠를 고집하긴 했는데, 원래부터 셔츠를 워낙 좋아했던 터라.
이 시국에 이 얘기 하는게 좀 그렇기는 한데, 그 때 한창 유니클로 붐이 일고 있을 때였다. 2010년대 초니까. 그래서 언젠가 한 번은 매장에 가 봤는데, 드라이 티셔츠였나 뭐 그런게 있었다. 두 장 사면 만이천원이었던가 그랬던 것 같은데,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평이 제법 괜찮아서 네이비색을 두 장 사들고 왔던 것 같다. 그리곤 나는 그걸 그 달에 열 장을 사게 된다. 검은색과 네이비색 두 가지로. 그리고 그 때부터 여름에는 청바지에 그 티셔츠만으로 아주 편하게 생활하게 됐다. 나중에 폴로셔츠도 추가하게 되었지만. 아무튼 이 스타일을, 별거 아니고 누구나 다 하는거지만, 어쨌든 뭔가 나만의 이름을 붙이고 싶어서 내맘대로 HF룩이라고 부르게 된다. Hassle-Free 룩. 지금은 뭔가 다르게 부르는 용어가 있는 모양이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부터 그때부턴 이게 워크웨어 같은 개념이 되버려서, 더 심플해졌다. 이 착장(?)이 더더욱이 적합해진 것이니깐. 근데 스윙댄스를 시작하면서 다시 옷차림이 난리가 나긴 했지만. 스윙씬이야 뭐, 옷을 고를 가치가 좀 있는 활동들이었기 때문에. 그래도 적어도 아침에 출근할 때는 문제가 없었다. 여러 의미로.
미국 오고 나서는 좀 더 생각을 많이 해 봐야 됐었는데. 셔츠는 포기하기로 했다. 이유는 1) 미국은 편한 옷차림 + 실용적인 옷차림이 일반적이다. 2) 내가 귀찮다.
후드 풀오버를 절대 안 입었었는데. 입게 되더라. 거의 10년만이었던 것 같다.
그 다음에는 여름.... 시애틀은 반팔을 입을 수 있는 날이 길어서. 뭐였겠나. 유니클로지. 아 물론 이슈 터지기 전이다. 2017년 2018년에 산거니까 태클은 걸지 말아주시길.
U-neck short sleeve t-shirt 라고 (맞나?) 다소 오버사이즈에 두꺼운 반팔인데. 여러모로 이게 괜찮았던 게 뭐냐면 일단 1) 튼튼했고, 2) 빨아도 멀쩡했고, 3) 저렴했고, 4) 살이 쪄서 그걸 가릴만한 오버핏이었다. 장당 15불이었는데, 저런 장점을 가지고 15불이면 입다 버려도 괜찮으니까. 대학생 때 입었던 두장에 만이천원짜리를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그래도 돈을 벌게 되었다 이거지. 약간 건방져진건가.
아무튼 그래서 몇 장을 샀겠나. 뻔하지. 열 장을 샀다. 다섯 장은 라지, 다섯 장은 엑스라지로. 돼지병이 심해져서 점점 더 돼지가 되다보니 큰 옷이 편해졌다. 아 이러면 안되는데 젠장. 결국 이 열 장을 아직도 입고 있는데 (사실 고백하자면 M도 하나 샀었는데 못 입게되서 어디 쳐박아뒀다) 이건 내 4월부터 9월까지의 아침 준비시간을 엄청 줄여주게 된다.
이런 스타일의 구매에 한 가지 더 추가했던 것은 속옷 구매인데, 이건 석사때 생긴 습관이다. 나는 중학생때부터 오랫동안 입어온 노스페이스 쿨맥스 카라티가 두 장 있는데, 이 때 쿨맥스 류의 의류의 어마어마한 장점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런 류의 속옷이 보이면 닥치는대로 사들였다. 브랜드 무관. 사이즈는 한둘정도 커도 세일가가 뜨면 무조건. 집에서 입어도 편하고 밖에 나가도 편하다.
한 가지 더, 극단적인 편의를 위해서 추가한 속성은, 색깔에 따른 사이즈/용도 구분이다. 하의는 밝은 색이나 패턴은 외출용, 어두운 색은 한사이즈 크게 해서 집에서 편하게 입는 용으로. 상의는 반대로. 이유는, 서랍을 열었을 때 어떤 속옷이 어떤 용도인지를 바로 알 수 있고, 사이즈를 확인하지 않아도 되니까.
더불어 속옷 개수가 많으면 뭐가 좋냐면, 빨래를 자주 할 필요가 없다. 속옷 개수가 적고 티셔츠 개수가 적으면 빨래를 자주 해야만 하는데, 거기서 쓰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절약이 된다. 같은 맥락에서 수건과 양말 또한 많을수록 좋다. 양말은 패션양말로 쓰는 것들을 제외하면, 데일리 양말은 죄다 같은 무늬 같은 색을 사 버린다. 짝 맞추는데 굳이 시간을 쓸 필요가 없다. 수건은 적당한 크기 적당한 가격이면 사는데, 수건은 갯수를 계속 늘릴 필요는 없다. 헤지고 못 쓰게 되면 그 때 보충하면 된다.
속옷은 하의가 30장 정도 있고, 상의가 20장 정도 있는 것 같다. 요즘도 가끔이지만 구매하니까, 앞으로 계속 늘어나지 싶다. 퇴근해서부터 새 걸 입어서 아침에 벗으니까 하루에 한장에서 두 장 정도, 그러면 대충 한달에 빨래를 두세 번 정도 하면 된다.
대학교 3학년 때에 이러한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는데, 여기에 보다 더 강한 자신을 갖고 발전시켜나갈 수 있었던 것은, 몇년 뒤에 알게된 스티브 잡스의 스타일을 보게 되면서였다. 아이폰을 2011년부터 썼는데, 그건 그냥 내가 제일 처음으로 어릴 때 썼던 컴퓨터가 맥이었으니 그걸 계승해보자는 차원에서 쓴거고, 사실 그 때 애플이나 스티브 잡스에 대해서는 관심이 전혀 없어서 몰랐는데. 석사 끝나갈 때 즈음 아이패드를 살까 싶어서 이것저것 알아보던 도중에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따라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아이폰을 쓰면서 iOS가 가진 감성 (혹자는 지겨워할 수 있는, 그 놈의 감성 타령....이지만) 에 매료되어 갈 즈음 그 집단을 이끄는 수장의 모습을 보게 되니, 다소 매료되었던 바가 있다. 분명히.
그러다가 일본 불매운동 이슈가 터지고 나서. 음. 사고는 싶었지만 그래도 사면 안되지 싶어서 대체재를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 알게 된 것이 AAA 티셔츠였다. 어, 사실 알게 된 경로가 요즘 이슈가 된 유튜버의 예전 영상이었는데. 그 얘기도 다음에 한 번 해 봐야겠다. 아, 광고나 협찬 같은 거 아니니 오해마시길 (그런거면 좋겠다 ㅋㅋ). 나중에 자세히 리뷰해보겠지만, 일단 한 번 링크는 남겨봐야지.
시험삼아 한 장 사 봤다. 성공한다면, 가격이 6~7불 선으로 유니클로의 절반 가격이니 훨씬 더 좋은 대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결과는 음... 100점은 아니지만 대충 80점 정도. 조금 더 얇고, 목선은 조금 더 타이트하고. 가격은 싸고. 핏은 조금 아쉽지만 막 접어서 막 입을 수 있으니.
그래서 아마도 당분간은 이걸 구매하지 싶다. 아마 한달에 두 장 정도의 페이스로. 왜냐면 이제 슬슬 유니클로 티셔츠들이 맛이 갈 때가 다가오는 것 같으니 말이다.
아무튼 오랜만에 주저리주저리 써 봤다. 다음번에 시간되면 저 위에서 얘기했던 '그 유튜버' 와, 그리고 이 티셔츠들 리뷰를 한 번 써 볼까도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