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비 컨설팅을 해드리다 보면, 여러 레벨의 지원자분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영어가 아예 안 되는 분은 지원을 잠시 미루시고 (혹은 다음 라운드를 준비하시고) 당분간 영어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권장합니다. 아예 안 된다는 말은, 일단 영어로 말하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한 '어구' 를 구사하는 데 자연스럽게 한 덩어리가 아닌, 단어 단어별로 말하는 분을 뜻합니다. 더불어 본인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불가능한) 경우에도 이에 해당합니다.
참고로, 박사 유학을 가려면, 연구만 잘 하는 것으로는 무리가 있습니다. 말을 잘 해야 합니다.
만약 본인이 말을 잘 못 하는 편이라면, 유학을 성공적으로 간다 하더라도 그 5년 혹은 더 긴 시간 동안 어마어마한 고통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태생적으로 말을 잘 못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 경우는 혹독한 훈련을 통해 말하기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즉, 영어를 잘 하기 위해서는 일단 한국어로도 말을 잘 해야 합니다. 조리 있게, 논리적으로, 설득력있게. 그리고 논쟁에서 지지 않는법 (이기는 법 말고) 에도 능해야 하며, 여러 배경지식 또한 곁들여져 있어야 합니다. 더불어, 센스가 있어야 합니다. 캐주얼/스몰톡에서 중요한 건 배경지식도 배경지식이지만 센스가 70% 이상입니다.
다소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이래서 인간관계를 다양하게 많이 겪어봐야 하는겁니다. 박사과정부터는 학생임과 동시에 professional career에 대한 준비를 하는 시기인지라, 내성적이기만 한 성격 그대로라면 차라리 한국에서 박사를 하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일 겁니다. 이 부분, 명심하시고 잘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영어를 늘리고 싶다면?
다행히도 이젠 리소스가 많습니다. 굳이 어학원을 갈 필요가 거의 없습니다. 그 시간에 화상영어나 전화영어를 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 컨설팅을 해드렸던 분들 중, 세 분 정도가 기억에 남습니다. 세 분 모두 발음이 좋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이었고, 다만 제가 놀랐던 것은 제가 던지는 질문들에 대해서 본인들의 생각을 충분히 다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건 분명 어려운 일이거든요. 본인이 생각하는바를 명료하게, 그리고 큰 부분부터 시작해서 디테일까지 들어가는 건 첫째로, 이들은 말을 잘 하는 사람인 것이고 (따라서 논리를 즉석에서 짜서 정돈된 말하기를 할 수 있음), 둘째로는 가끔 틀린 표현이나 문법이 나오더라도 굴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갈 수 있는 배짱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 분 모두 화상영어를 꾸준히 해왔다고 하셨습니다.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토종 한국인이고 활발한 (영어로 말할 기회가 어마어마하게 많은) 대외활동 없이는, 이건 사실상 예외 없이 불가능하거든요.
참고로,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영어 무진장 잘했습니다. 저도 토종 한국인이고, 특별히 사교육을 받진 않았지만 혼자 영어가 좋아서 맨날 쓰고 다녔던 터라, 외국인들이랑 대화하고 하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었 (다고 느꼈) 습니다. 동호회에서도 외국인들이 오면 제가 안내를 하거나, 투어를 시켜줬었고. 학창 시절에는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곧잘 입상하곤 했습니다. 대학 다닐 때에도 영어로 프레젠테이션 하면 해외에서 살다 온 친구가 아닌 이상 저보다 잘 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 여러분이 외국인들과 interaction 하는 건, 그들이 타지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인 우리를 배려해주는겁니다. 한 10배 정도 쉬운 영어를 써서 대화해주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잘 모르시겠다면, 그들이 영어로 가족들과 통화하는 걸 한번 들어보세요. 과연 그 수준으로 대화가 가능할지.
저는 그 착각에 빠져 살다가 유학 나와서 신나게 두들겨 맞고 만신창이가 되서, 겨우겨우 살아남은 케이스입니다. 그나마 운이 좋았던 건, 같은 팀 사수였던 친구, 그리고 박사 동기인 친구 이 두 명이 워낙 착해서 (+ 저랑 일을 어쨌건 해야 하는데 소통이 하도 안 되서) 저를 거의 붙잡고 영어를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미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어릴적부터 많았던 터라, 그나마 흡수와 이해가 보통의 한국인보다는 서너배 정도 빨랐습니다. 그럼에도 이 태도와 마인드셋을 바꾸고 안정화시키는 데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유학을 나온다는 것은 단순히 연구하는 지역이 바뀌는 것 이상을 뜻합니다. 다른 문화권에서 다른 언어로 생활하는 것을 뜻합니다. 연구하는 지역만 바꾸려면 굳이 박사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건 별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요즘같은 시대에 미국에서 박사를 하는 것 자체를 타이틀로 여긴다면 차라리 안 나오시는게 낫습니다. 미국에서 박사를 하는 것은, 더 넓은 시야를 기르고 더 우수한 인재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나를 성장시키는 데에 있으며, 언어는 그에 있어 가장 기초적인 수단입니다.
화상영어, 전화영어 뭐가 됐든 좋습니다. 유학을 준비하실 생각이라면 오늘부터 당장 시작해야 합니다. 원서 지원 시즌이 다가오면 그 때 해야지 하면 늦습니다. 언어는 그렇게 단기간에 늘지 않습니다. 적어도 반년 이상의 투자가 필요합니다. 저도 유학나오기 전부터 화상영어를 꾸준히 했더라면, 1년차와 2년차를 좀 더 재밌게, 그리고 의미있게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여담입니다만,
다소 냉정한 이야기처럼 들리시겠지만, 거기에 지불할 비용이 없다면 유학 나오는 것 자체를 진지하게 다시 고려해보셔야 합니다. 대학원 유학은 돈이 드는 과정입니다. 특히 박사는 5년 정도의 긴 호흡인데,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학과에서 주는 월급보다 추가적으로 돈이 더 많이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아예 여유가 없는 상황이시라면 가급적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알바를 하던 부업을 하던 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포닥을 나오시면 되죠.
미국에 나오시면 F1비자홀더인 이상 알바나 부업을 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 온전히 학과에서 주는 수입에만 의존하게 되며, 전체적으로 미국의 물가가 한국보다 2배 (혹은 그 이상) 가량 비싸기 때문에 단순히 오퍼레터에 쓰인 3~4만불의 금액만 가지고 희망을 가지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 차도 있어야 하고 (+ 유지비, 보험료, 수리비 등), 휴가도 가야 하고 (참고로 휴가는 무조건 가야 합니다. 이건 다음에 또 다루겠습니다만, 기본적으로 휴가 안 가고 아끼다보면 멘탈이 엉망이 될 겁니다. 확신합니다.), 월세도 내야 하고, 병원비도 내야 하고, 장도 봐야 하고, 이외에도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돈을 다 내고 나면 월급은 부족하게 느껴질 겁니다. 이 경제적인 부분을 무시하고 나오시면 괴로워질 겁니다. 반드시 숙고하여 옳은 결정을 내리시길 바랍니다.
결론은, 언어는 정말 중요합니다. 간혹 '내가 한국어로 붙으면 얘내들 다 바를 수 있는데' 라는 생각으로 자기위안을 삼으실 분이 있을텐데, 어여 버리시고 한두명 잡아서 죽어라 물고 늘어지시길 권장합니다. 화상영어든 전화영어든, 최대한 빨리 시작합시다. 벌써 2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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