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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한 번, 졸업관련된 큰 고민이 있었다. 지도교수님과 12월에 개별미팅을 하다가 생긴 고민인데, 그 때문에 난생 처음 불면증까지 겪을 정도로 내 머리가 복잡했었다. 난 머리만 대면 어디서든 언제건 상관없이 자던 사람인데...

 

각설하고,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 연말 holiday season)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보았다. 일단 건물에 사람이 없으니 오후쯤에 나가서 새벽까지 실험하고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하다가, 몸이 맛이 가버리는 바람에 한동안 집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자연스레 Amazon Fresh의 편리함과 위대함을 깨닫게 되었고, 여기 생각보다 멀쩡하고 맛있는 것을 많이 판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몸이 망가지게 된다 ㅎㅎㅎㅎ 왜냐면 맛있는건 대체로 몸에 안 좋거든. 망할 치킨너겟....

 

나는 본래 태어날때부터 몸이 약했기에,  대학을 가고 나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봤다. 밤마다 뛰고, 낮에는 기숙사 짐에서 운동하고, 먹는 양을 늘리고.... 하다 보니 건강하진 않은데 뭔가 내 기준에서는 돼지가 되어 있었다. 앞자리 7을 처음 봤던 것 같다. 스물둘~셋 때에는 체계적으로 운동을 했...나? 어쨌든 건강하게 살을 잘 빼고 근육도 만들었는데. 다행히 그 때 만든 체력이 지금까지도 가는 것 같기는 하다. 그 때 만든 체력으로 지금도 버티고는 있는데, 이게 미국에 오고 나서 몇 가지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바로 스트레스 관리.

 

코로나 때문에 댄스홀이 죄다 닫았고, 학교에서 그나마 열리던 스윙키즈 강습도 온라인이 되어버렸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couch potato가 되었고, 몸무게는 또 불어나기 시작했겠지 뭐. 뻔하다.

 

코로나가 터진 직후에 PhD qualification exam 을 쳤고, 패스한 다음에는 재미삼아서 집 근처 트레일에서 하루 한시간씩 러닝을 시작했다. 원래 걷고 뛰는걸 좋아했어서 다리의 튼튼함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뛰니 허벅지니 종아리니 난리가 났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2020년 말. 억울하다. 없던 걸로 하고싶다. 2020년 나이 안 먹은걸로..... 최소한 0.5살로 딜해주면 좋겠지만 원래 행복한 일은 안 일어나니까 넘어가고.

 

머리가 갑자기 안 돌아가기 시작했다.

Work from home이 주는 단점 중 하나인 것 같다. 일과 생활이 분리가 안 된다. 원래 분리시키려고 하던 사람은 아닌데, 강제로 WFH가 되니 이걸 분리하지 않으면 삶이 망가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와중에도 꾸준히 아마존 프레쉬로 살을 찌웠고.

 

콜라는 위대하다. 술담배를 안 하다보니 결국 하나 즐기는게 coke zero인데 이것도 사실 간에 주는 부담은 비슷하다고 하더라. 아니면 말고, 어쨌든 안먹는게 훨씬 좋겠지. 근데 안 먹을순 없다. 나도 사람이니까.

 

주로 집에 있으면서, 연구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데스크에 앉아있는 시간은 길어지는데 아이디어는 영 구렸다. 오히려 멍청해지는 느낌.

 

쓰레기 버릴 때나 커피마실때 루프탑 가는 거 외에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지가 일주일이 지났을 때 즈음, 

불면증은 극에 달했고 몸 컨디션도 최악이었다. 이러다 죽을 것 같아서 억지로 밖에 나가서 한시간을 걷고 들어왔는데,

 

특이하게도 갑자기 논문이 잘 읽히고 아이디어가 잘 나왔다. 그 아이디어를 그대로 실험실에 들고가서 실험을 해봤는데, 결과가 흥미로웠다.

 

바로 지도교수님과 미팅을 잡았고, 결과가 좋았다. 고민도 해결됐고, 드디어 나는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그 날 이후로 수면사이클을 다시 원래대로 돌리기 시작했는데, 거기에 반드시 아침 10시에 30분 정도 트레일을 뛰는 루틴을 추가했다.

 

Daily photoshoot w/ Iphone, on the Burke-Gilman Trail. Copyright @Kim's Library

 

첫날이 아주 지옥이었다.

한동안 안 뛰어서 러닝에 쓰이는 근육이 다 엉망이었기 때문에, 하루종일 그리고 그 다음날도 근육통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아침에 죽을것같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낮에 일할 때의 효율이 조금씩이지만 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몸은 엉망이다. 식단이 박살났던 덕에 소화도 잘 안되고, 장은 부어있고, 근육이 빠진 몸은 푸쉬업 100개 하기도 버겁다 (작년에는 하루에 300개씩 했었다). 그렇지만 뛴지 3일이 지났을 때 다리는 더이상 근육통이 오지 않았고, 수면의 질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머리가 다시 멀쩡하게 돌아간다.

 

의자에 앉아만 있으면 멍청해진다.

 

걷고 뛰어야 한다. 걷기와 뛰기의 위대함은 이미 많은 과학자들 및 학자들이 강조한 지 오래다. 다만 내가 안 지키고 있을 뿐.

 

Image from "Imitation Game", captured from the movie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을 보면, 매일 아침 (저녁이었나?) 앨런 튜링 (베네딕트 분) 이 뛰는 장면이 반복해서 나온다. 나는 이 영화에서 다른 장면보다도 이 부분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뛰는 수학자, 날이 다가올수록 더 많이 더 빡세게 뛰는 앨런.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박사과정 4년차의 1/4을 보낸 시점에서, 남은 시간들을 어떻게 보낼 지, 적어도 한 가지 루틴은 명확해져서 좋다.

 

뛰어야, 걸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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