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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한 번 쓴 적이 있지만, 나는 한국에서 지낼때는 시간을 정말 분 단위로 쪼개서 썼다. 물론 모든 쪼개진 시간이 생산적이었다고는 죽어도 말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쪼개진 시간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써 내 멘탈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필요할 때 마다 잘 짜내서 써냄으로써 내 본업적 성취 및 부차적인 성취들에도 한 발짝씩 다가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내가 삶을 이룩해가는 방식이고, 그로부터 얻는 즐거움과 기쁨으로 인해 내면을 회복시키는 나만의 살아나가기 전략이다.


헌데 미국에 오고 나서는 그런 것들에 대해 한국에서만큼 크게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그 흔해빠지고 진부한 이야기, 미국으로 건너가 살다 잠깐 한국 들른 친구를 봤더니 옷이 그지꼴에 머리도 헝클어져 있었지만 눈이 빛나고 있더라는 이야기. 그거 정말로 겪어보니 얼추 맞는 말이더라고. 물론 외관이 그렇다고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한국만큼 외관에 신경을 써야 되는 것도 아니고, 그보다는 사람의 본질 자체에도 무게가 많이 실리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나에게 당면한 내 꿈과 내 목표를 이루려면, 모든 걸 다 땅에 내려놓고 전력으로 몰두해야 되니까.


아 근데 살은 좀 빼야된다. 인정함.


밥을 혼자 먹어도 두시간이 넘게 걸려서 먹고, 일부러 걸어서 한참 먼 곳의 식당에 가고, 자고 싶은 만큼 자고, 일하고 싶은 만큼 일한다. 죽을만큼 일이 재밌을때는 정말로 죽을만큼 일한다. 그럴 때는 잠도 안 온다. 실험하던 게 결과가 나올수록 신기해서 20시간이고 30시간이고 랩에 쳐박혀서 이것저것 만들어댈 때도 있고, 재밌는 논문을 찾아 읽으면 한두시간은 금방 간다.


그러다 좀 피곤하다 싶으면 그냥 하루 학교를 쉰다.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첼로곡 틀어놓고 하루종일 자면 그것도 나름의 행복이다. 가끔 한국의 친구들과 시간맞춰서 게임도 하고, 떠들고. 이곳의 교회 사람들과 주말에 놀러가기도 하고, UW의 한국인들과도 저녁을 먹는다거나 파티를 한다거나 하면서.


처음으로 내가 미친듯이 무언가를 갈망하면서 살아 숨쉬고 있구나. 좋아하는 것을 온 정신 온 힘을 다해 쫓아간다는 건 이렇게 기쁜 것이구나.


분명, 한국에서 연구를 할 때에도 분명 지금 잊혀져서 그렇지 이런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차이점은, 나는 이 '미국에서의 박사과정'을 준비하면서 내 20대를 다 바쳤기 때문에, 지금 내가 보내는 이 시간들이 시리게 기쁘다. 어릴 적 부터 학문을 업으로 삼고자 하여 겨냥하고 걸어왔던 발자취가 조금씩 쌓여, 의미 있는 시간이 되고, 의미 있는 기록이자 자산이 되었다. 세계를 무대로 싸워보자, 활약해보자던, 조금씩 그 몸집을 불려갔던 나의 다짐은, 이제 비로소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연구 분야가 바뀌긴 했지만, 분명 내가 쌓아온 나의 경력은 헛되지 않았고, 나를 강한 연구자로 만들어주었다 확신한다. 이제 나는 나와 동일한 경력을 가진 그 누구와도 붙어서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박사님들, 교수님들이야 당연히 나보다 오랜 경력자니 나보다 뛰어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그들의 경력에 도달했을 때, 나는 분명 그들과는 비교하지 못할 경지에 이르러 내 경력을 이어가고 있으리라.


나는, 결코 지지 않는 꽃을 피우기 위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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