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시절, 내 롤모델이었던 선배이자 누나가 있었다. 어찌 보면 유학에 대해 막연한 환상만 지니고 있다가 구체화시키기 시작한 게, 2011년에 AKUSSA 모임 가서 이 누나를 만나고 난 후 부터인 듯 하다. 학과 선배였기 때문에 생각보다 여러 가지를 나눌 수 있었고, 내가 지금 여기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일정 부분 Dr. Choi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카이스트에서 석사를 하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뜬금없이 누나가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올렸었다. 정확히 생각나지는 않지만, 글의 요지는
1. 나는 행복하다.
2. 나는 행복한가?
3.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내 삶을 영위할 수 있을 만큼의 돈도 충분히 벌고 있다.
4. 내가 선택한 길이다.
5. 그리고 나는 박사과정 유학을 나와서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으니,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6. 그래서 힘들다고 하면 직장생활하는 친구들은 '그래도 니가 나은거야' 라며 격려보다는 오히려 묘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7. 정말 그럴까? 라고 생각해봤는데 아닌 것 같다. 어쨌든 나도 힘들긴 매한가지다.
8. 물론 나는 잘 해나갈 것이고, 내가 선택했고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이 일을 평생 업으로 삼아 걸어갈 것이다.
이때만 해도 내가 젊을...아니 어릴 때라서, 이 글을 아주아주 표면적으로만 이해했던 것 같다. 그러나 정작 내가 누나의 입장이 되어보니 뭔가 느껴지는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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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택한 길이라고 해도, 그리고 이 길이 절대로 비단길이 아닌 걸 알고서도 걸어가리라 마음을 먹었었어도,
그 마음가짐이 한결같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특히 최근 몇 달은 거의 지옥에 살다시피 하며 보내고 있다. 물론 내가 욕심이 많은 탓이다.
나는 잘 하고 싶고, 또 많은 걸 해보고 싶다. 지도교수님의 인정을 받고 싶고, 그를 넘어서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보고 싶다고 감히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내게는 마음 맞는 친구들이 많고, 이런 상황을 이야기할 때 공감해주고 들어주는 친구들이 많다. 친구들을 참 잘 두었다.
그래. 그렇다. 내가 선택한 길이다.
언젠가 그 글에 뒤이어 포스팅되었던, 내 기억 한 편에 남아있는, 누나의 글귀로 (기억에 오류가 있을지도) 이 잡설을 마무리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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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무리 괴롭고 공포스러운 나날이 이어진다고 하더라도, 나는 처절하게 싸워 이겨낼 것이다. 바득바득 기어올라 마침내 내가 원하던 곳에 도달하고야 말 것이다.
나의 나다움은 결국 나만이 지켜낼 수 있고, 동시에 그 누구도 해칠 수 없다.
나는 여전히 반짝반짝 빛난다. 원래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까. 나는 영원히 빛날 테니까.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결국 영원할 수 없지만, 나의 의지는 영원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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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찌보면 약간은 tentative하기도 하고 뭐...여러 느낌이 드는 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존감이 너무 아름다운 사람이다.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나의 선배님. 유학 버킷리스트에 이 선배님을 미국에서 만나서 커피 한 잔 같이 하는게 있었는데 과연 언제쯤 가능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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